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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따라 바람따라
동두천 동양대학교 과거 재벌사가 호텔흘 가지고 있었던 아유중 히나가 호텔운영으로 인한 수익성 때문보다는 땅값 상승이 한 이유였습니다. 지방에 우후죽순처럼 생겼다가 사라지는 지방의 대학교도 교육의 목적보다는 다른 이우가 있지는 않나 싶습니다. 동양대학교앞 이발소에서 들은 이야기 과거에는 이일대가 동두천의 중심이었다고 그레서 철도도 이지역을 지나가게 되었다고 동양대학교에 있는 축구장. 학기초라 그런지 문이 모두 잠겨 있습니다. 공무원 사관학교 동양대학교라는 슬로건이 공장단지 인근에 교회가 있습니다, 굴뚝 연기가 올라오는데 냄새가. 주차장이 학교안으로 들어가는 주차장과 밖의 주차장이 있는 듯, 일부 학생들이 차타고 오는데 벤츠도 있네요 건물과 주차장 사이에는 묘소가 있습니다. 조선시대 이조판서였다고 비문에 편..
김포 장릉에 묻혀 있는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 서울에 있는 궁궐인 경희궁터의 주인이기도 해 사실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매우 궁굼했다, 어제 황현필씨의 역사 강의를 들어보니 정원군은 조선에서 가장 찌질한 왕 수위를 다투는 선조의 20명이 넘는 자녀중 개차반인 3명중 한명이었다고 합니다. 지난 겨울 아파트가 보인다는 왕릉이야기가 많이 언론에 보도되었는데 그 왕능이 장능. 지난 겨울 추위가 너무 가혹해서인지 세면장에도 호로가.... 재실의 모습. 연지. 날이 따뜻해지면 연이 많이 올라오는 곳입니다. 봉분에 올라가면 아파트가 보인다고 하는데 관람객은 저기 못 올라갑니다. 정자각의 모습 조선시대에 종묘, 왕릉 등을 관리하거나 제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지내던 수복방 정원군의 부인이자 인조 어머니의 비석받침틀 정원군의 ..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1897년에 경운궁으로 환궁하면서 본래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던 중국풍 별관이자 조선왕실의 별궁인 남별궁을 훼철하고 그 자리에 몇백년 만에 다시 환구단을 지었고 1897년(광무 원년) 고종은 이 곳에서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낸 후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게 되고, 이 때부터 환구단은 대한제국의 자주 독립과 국가 평안을 기원하는 신성한 장소로 부상하게 되었다. 대한제국은 기본적으로 동지(冬至)와 새해 첫날에 제천(祭天) 의식을 거행하였다. 사실 환구단이 없어지고 황궁우만 남아있고 바로옆에 조선호텔이 있어 복원도 어려워 호텔의 정원 역활만 하는 것은 아닌지. 돌로 만든 북. 고종의 즉위 40년을 기념하여 만들었다고. 북의 옆면에는 용이 새겨져 있고 황궁우 안에는 신위판들이 봉안되어 있고 천..
덕수궁을 들어가자마자 하마비가 나옵니다. 덕수궁은 처음 월산대군의 집터였던 것을 임진왜란 이후 선조의 임시거처로 사용되어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다가 광해군 때에 경운궁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1907년 순종에게 양위한 고종이 이곳에 머무르게 되면서 고종의 장수를 빈다는 의미에서 덕수궁(德壽宮)이라 다시 바꾸었다고. 1897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긴 이후부터 중화전을 비롯하여 정관헌, 돈덕전, 즉조당, 석어당, 경효전, 준명전, 흠문각, 함녕전, 석조전 등 많은 건물들을 지속적으로 세워졌다. 이곳은 고종의 재위 말년의 약 10년간 정치적 혼란의 주무대가 되었던 장소로, 궁내에 서양식 건물이 여럿 지어진 것이 주목된다고. 덕수궁의 정문이 되어버린 대한문 금천의 흔적으로 비교적 최근 복원되었..
용양봉저정(龍驤鳳䎝亭)은 조선 정조 임금이 수원 행차힐떄 한강을 건너서 쉬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왕이 힘들면 왕이 건널 수 있도록 준비한 사람들은 더 힘들었을텐데 장승백이라는 지명도, 남태령도 모두 정조 임금으로 인해 생긴 지명이라는데 수원행이 많긴 많았나 봅니다. 예전에는 주변의 민가와 처마가 거의 맞닿아 있었는데 왕의 공간이라 그런지 단청이 건물옆으로 작은 공간들이 문을 걸어 올릴 수 있는 시설이 용양봉저정 바로 아래에 주교사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비석이
예전 의정주 인근에 있는 신숙주의 묘는 그야말로 삐까번쩍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가 대개 그러하듯 배반을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자가 있디면 전자가 훨씬 각광을 받는 것이 우리의 역사였습니다. 사육신도 온 몸이 찢겨 죽으며 선왕의 유지를 받든 이와 그렇지 않은 신숙주가 있었지만 신숙주는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서육신의 사당. 정조임금떄 처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사당 뒤로 사육신의 묘가 있지요. 원래 있던 묘와 가묘(假墓)가 함께 있다네요 서육신 역사관, 2층에 가면 사육신에 관한 내용이 있네요 태양광 상록수라네요